2018년은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다시 투자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간 고유계정을 통한 Seed 투자, 직접 만든 회사들의 펀딩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꼈던 투자 시장에 대해서, 스톤브릿지 재직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오롯이 제대로 느껴보았던 1년이라 한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물론, 해당 내용은 대표성을 띄는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감상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투자 라운드의 다변화

작년 한 해 동안에 한국 시장의 여러 deal flow를 관찰하면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점이 Pre Series A 라던지, Pre Seed 라는 용어였습니다. 원래 벤처캐피탈을 통한 투자유치 라운드는 외부 기관투자를 받는 순서에 따라 Seed 이후에는 Series A, B 식으로 그냥 알파벳 순으로 명명을 한 것이지, Series A 라운드를 정의하는 공통점이 있다거나, Series B 라운드의 대상이 되는 회사의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종종 오랜 기간 동안 bootstrapping을 통해 성장한 회사가 수백억 규모의 외부 기관투자를 처음으로 유치하면 그것에도 Series A 라는 단어를 씁니다. 반면 성장이 생각보다 빠르지 않아 여러차례 펀딩을 받아야 하는 회사들의 경우에는 그 회사의 규모에 비해서는 너무 자주 투자를 받게 되어 Series D, Series E, Series F의 투자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유독 Series A라는 것을 마치 시험의 정답이 있고 스타트업 성장 단계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특정 range나 수준이 있다고 요건들을 정의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경우에 Series A 단계를 통과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마일스톤의 개념이 더 생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직 시장에 통용되는 Series A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고, 또 그 규모의 펀딩을 하기에는 좀 부족해보이기 때문에 Pre Series A 라는 라운드가 새로 생성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시중에 돈이 풀리고, 몇천만원에서 5-8억 정도의 규모까지 집행할 수 있는 투자사들이 정말 많아지고, 해당 투자사들이 돈을 push 하고 스타트업들은 더 자주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다보니, 모든 라운드를 동일한 라운드로 명명할 수는 없고, 또 지난 라운드에서는 1억을 받았는데, 이번에 3억 정도를 더 받는다고 해서 이 정도 규모를 Series A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보니 라운드 자체를 쪼개는 현상이 관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몇천만원에서 2-3억 정도의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없고, 5억이나 10억 역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라운드를 너무 잘게 쪼개는 것은 단순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므로, (+ 회사 밸류에이션 상승 폭이 크지 않아 결과적으로 더 심한 dilution과 너무 많아지는 주주 구성으로 인한 번거로움 까지도) 필요한 돈의 규모를 확실히 정하고, 해당 규모의 돈을 가지고 스타트업의 정의에 맞게 큰 폭의 성장을 꾀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전체적인 deal flow 수준의 하락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만, 저희는 그렇게 많이 느꼈습니다. 양과 질 측면에서 모두 아주 공격적인 투자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은 2018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왜 그런걸까를 돌이켜보니 그래도 납득 가능한 두어가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창업의 난이도가 많이 상승했던 것 같습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트렌드가 생성되면서, 정말 많은 창업들이 일어났고, 또 기존 PC 시대에는 지지부진했던 사업들이 모바일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조명받으면서 큰 폭의 성장세를 이뤄낸 회사들이 다수 탄생했습니다. 지금은 이제 2018년이고 모바일은 과거와 같은 뜨거움을 많이 잃어버렸는데요. 그 뒤를 이은 트렌드가 바로 AI (인공지능)입니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모바일과 다르게 진입장벽이 상당합니다. 즉, 모바일 앱은 생각보다 제작, 기술적 측면에서의 난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기가 상당히 용이했습니다만, 인공지능 분야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초보자가 배워서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은 컴퓨터공학 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복수의 사람들이 모여야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영역이 메가 트렌드로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창업팀들이 양적으로 폭발하기엔 진입장벽이 있고, 양이 적기 때문에 질 측면에서도 유사한 비율로 감소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 가지 더 빠트릴 수 없는 요인이 있다면 단연 블록체인입니다. 다만, 블록체인의 경우에는 2018년 한해의 시작은 창대했지만 결말은 매우 어두웠다는 점이 있고, 또한 기존 제도권에 있는 기관투자자들의 경우에는 법적/제도적 규제로 인해서 원활히 투자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는 점에서 deal flow 기근에 다른 각도에서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3.온라인 외 영역에서의 창업 증대

2번에서 언급된 deal flow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실제 많은 회사들이 성장을 하고 만들어졌는데요. 한 가지 독특했던 것은 이러한 창업들의 경우에는 우리가 과거에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했던 전형적인 인터넷/모바일 기반의 서비스들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원래 스타트업이란 사람과 컴퓨터만으로도 대규모 시설장치가 필요한 산업보다 더 큰 회사가치를 만들 수도 있다는 특성으로 많이 설명이 되는데, 최근에는 그런 협의의 범위를 넘어서서 기존 산업의 혁신을 일으키는 회사들이 초반에 다소 사람/돈/인프라가 많이 필요하더라도 광의의 스타트업 범주에 넣어서 유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나 – 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한 해였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이끄는 회사는 단연 UberWeWork, Airbnb입니다. 모빌리티와 부동산 분야에서 수십조원 이상의 회사가치를 만들면서 전체 트렌드를 리딩하고 있는 곳인데요, 실제로 이러한 회사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철저히 실물상품 (차량, 공간)을 베이스로 사업을 영위합니다. 모든 것이 가상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Google, Facebook과는 다른 비즈니스라는 것인데요, 이런 실물상품을 직접 핸들링하다보니 이러한 비즈니스는 확장에 있어서 상당한 규모의 자본투자가 요구됩니다. 이러한 자본투자는 벤처캐피탈 시장의 확대에 따른 수혜를 입으면서 기꺼이 투자자들이 기존과는 다른 규모의 투자금을 제공하는 환경을 업고, 대규모 자본을 투여하면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한국 시장도 미국 실리콘밸리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모빌리티와 부동산 시장의 혁신은 거스를 수 없는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한국에도 다양한 형태의 유관 분야 비즈니스들이 태동했고, 커진 국내 벤처캐피탈 시장 규모는 이에 발맞춰 대규모 자본을 제공하면서 혁신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창업이라고 하면 공동창업자들의 퇴직금을 쌈짓돈으로 모아서 작은 모바일 서비스를 오픈하고 확장해나가는 것을 주로 생각했던 것에서 더 나아가, 처음부터 이렇게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비즈니스에도 기꺼이 혁신을 생각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판을 키워나갔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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